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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 오기 전에는 OMA, MVRDV 같은 동시대 건축가들의 작업들을 좋아했는데,
네덜란드에 사는 동안 건축답사를 다니다 보니 20세기 초반 모더니즘이 태동하던 시기의 건축물들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작년에 글을 쓰다가 날아가 버려서 다시 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네덜란드를 떠나기 전에 글을 올리는 것이 의미 있겠다 생각해서 그동안의 건축기행들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엄선한 5가지 네덜란드 모더니즘 건축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1. 헤리트 리트벨트 Gerrit Rietveld - 슈뢰더 하우스 Schröder House (1924), 우트렉 Utrecht
2. 빌름 마리누스 두독 Willem Marinus Dudok - 힐버줌 시청 Hilversum Town Hall (1931), 힐버줌 Hilversum
3. 레더트 반 데어 불르트 Leendert van der Vlugt - 반 넬레 공장 Van Nelle Fabriek (1931), 로테르담 Rotterdam
4. 레더트 반 데어 불르트 Leendert van der Vlugt - 손넨벨트 하우스 Sonnenveld House (1933), 로테르담 Rotterdam
5. 헨드릭 페터스 베를라헤 H. P. Berlage - 덴하그 미술관 Kunstmuseum Den Haag (1935), 덴하그 Den Haag
+ 존 헤이덕 John Hejduk - 월 하우스 Wall House (1973/2001), 흐로닝언 Groningen
1. 헤리트 리트벨트 Gerrit Rietveld - 슈뢰더 하우스 Schröder House (1924)
우트렉 Utrecht이라는 대전같이 국토의 중앙, 교통의 중심지인 도시에 위치한 주택이다.
리트벨트는 건축가보다는 산업디자이너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위키피디아에는 인테리어디자이너, 건축가로 나온다)
미술교과서에 나오는 불편하게 생긴 빨간색 리트벨트의자를 디자인한 사람이다.

자전거, 벽돌집과 슈뢰더 하우스가 한 컷에 있다니 네덜란드 국가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사진이 아닐까 혼자 감탄한다.
다른 대부분의 모더니즘 주택들처럼 주변 맥락에서 동떨어져서 잔디밭에 고고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반적인 주택가 모퉁이에 있어서 당시에 얼마나 새로운 건물이었을지 바로 비교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분명 슈뢰더 하우스에 대해 학교에서 배웠지만 건축가 리트벨트와 건축주 슈뢰더 부인이 불륜관계였다는 것만 기억하고 건축적 의미에 대해서는 이번 기회에 다시 알게 되었다.
중심에 위치한 계단실은 천창과 유리문을 열고 닫으며 공간을 구획하는 기준이 된다.


바닥과 천장에 위치한 면과 선은 전체의 직사각형 평면이 용도에 따라 거실, 침실, 응접실로 나뉘는 기준이 된다.
검은색 직선으로 공간을 구획하고 흰색, 빨간색과 파란색 각각의 면은 몬드리안의 그림을 공간으로 옮겨놓은 것만 같다.

재미있었던 창문 고정장치.
모더니즘 건축에 흥미로운 이유는 장인정신과 공장식 규격화의 경계에 있기 때문이다.
현대건축이 모더니즘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공간적 디자인은 현대와 비슷하지만 곳곳에 숨어있는 문고리, 경첩, 커튼 등 맞춤제작된 요소들은 그것이 가능했던 20세기 초반의 건축적 담론과, 자본과, 시간적 여유가 부럽다.

슈뢰더 하우스만 보기 위해서도 우트렉이라는 도시를 방문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운하와 조화를 이루는 구도심의 분위기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도심에서 슈뢰더 하우스에 가는 길목에 큰 공원이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잠시 공원에 누워서 쉬어가기도 했었는데 평화롭고 여유로웠던 기억이다.
2. 빌름 마리누스 두독 Willem Marinus Dudok - 힐버줌 시청 Hilversum Town Hall (1931)
힐버줌이라는 도시는 암스테르담 남동쪽에 위치한 도시로,
네덜란드에서 드물게 해수면보다 높아서 운하를 찾아볼 수 없는 도시이다.

5번째 건물로 소개될 베를라헤의 덴하그 미술관을 떠올리게 한다.
건축가 두독이 베를라헤가 이끈 암스테르담 학파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무실로 이용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많은 자연광을 끌어들여 쾌적한 내부환경을 만들고자 중정을 만들었다고 한다.
화단에 꽃의 종류와 색상까지 도면에 명시했다고 하니 과연 모더니즘 건축가들의 디테일은 상상을 초월한다.


두 사진 속 시계 역시 건축가가 디자인한 시계이다.
좋은 재료도 마음껏 쓰고 모든 디테일을 디자인하고 부러우면서도 얼마나 생각할 요소가 많았을까 상상해 보면 덜 부럽기도 하다가도 부럽다.

두독이 힐버줌 도시건축가로 활동했기에 도시 곳곳에 그가 설계한 많은 건물들이 있는데 중앙역 바로 위에 위치한 또 다른 주택이다.
마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살 것 같은 귀여운 집이다.
3. 레더트 반 데어 불르트 Leendert van der Vlugt - 반 넬레 공장 Van Nelle Fabriek (1931)
로테르담 서쪽에 스키담이라는 도시와 오히려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구) 담배공장 현) 사무소로 사용되는 건물이다.

매번 로테르담으로 가는 기찻길에서 보는 풍경이다.
사무소로 이용되기 때문에 평소에는 외부인 출입이 불가능하고 9월 오픈하우스가 있는 날 신청하면 방문할 수 있다.

내부는 구경 가능하지만 건물들을 연결하는 저 멋진 통로들은 안전상 이유로 아예 출입이 불가능한 것 같다.


20세기 초반의 공장답지 않게 큰 창문과 높은 층고를 가진 쾌적한 내부환경이다.
공장주는 어떤 기업가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길래 현대에도 찾아보기 힘든 쾌적한 공장을 만들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평소 지나치며 꼭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던 건물을 견학할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다!
4. 레더트 반 데어 불르트 Leendert van der Vlugt - 손넨벨트 하우스 Sonnenveld House (1933)
로테르담에 미술관이 모여있는 뮤지엄플라인 museum plein에 위치해 있어서 접근성이 아주 좋다.

바로 위 공장과 똑같은 건축가가 설계한 주택이다.
왜냐하면 건축주 손넨벨트씨가 공장주이기 때문이다.
건축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건축가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한다.


네덜란드 모더니즘 주택들 중 가장 잘 보존된 곳이라고 한다.
가구뿐만 아니라 접시 전화기 타자기 등 소품들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계단 아래에 위치한 세탁실 겸 작업공간.
오래된 건축물을 미술관으로 변형하면서 주차장이나 다용도실에 해당하는 공간들을 매표소, 기념품 샵 등으로 바꾸는 것이 괜히 서운할 때가 있다.
당시 생활상을 유추하는데 중요도는 거실이나 안방 침실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5. 헨드릭 페터스 베를라헤 H. P. Berlage - 덴하그 미술관 Kunstmuseum Den Haag (1935)
집과 가까이 있어서 정말 자주 갔던 미술관이다.
건물도 멋있고 콘스탄트의 뉴 바빌론과 몬드리안 등 소장품도 훌륭하고 좋은 기획전들도 많았다.
집을 제외하곤 한국에 가면 가장 그리울 건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주 출입구가 있고 각각의 공간들이 하나의 직육면체를 이뤄 중첩되어 전체 형태를 만든다.

비슷한 형태가 반복되는 것 같으면서도 다양하다.
내부는 사회주의 건축이 연상될 만큼 대칭적이고 규격화되어 있다.
내부 사진들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곧 찾아서 업로드할 예정.
+ 존 헤이덕 John Hejduk - 월 하우스 Wall House (1973/2001)
번외 편 월 하우스는 흐로닝언 이라는 북쪽 도시에 위치한 포스트 모더니즘 건물이다.
뉴욕 5중 한 명인 존 헤이덕은 미국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로,
실제로 지어진 건축보다는 이론적 개념적 설계가 주를 이룬다.
월 하우스 역시 1973년 이론으로 제시된 설계도를 2001년 네덜란드 흐로닝언에 짓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정식 명칭은 wall house#2이다.

주말에만 무료관람이 가능하며 입구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면 작은 전시가 있다.
최근 본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가여운 것들 영화 속 건물을 보며 월 하우스가 생각났다.
현실적이지도 실용적이지도 않지만 이제는 기존의 것이 되어버린 모더니즘에 반하는 새로운 개념적 건축이다.

새롭다고 다 의미 있고 긍정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기존의 것들을 당연하게 수용하는 것에서 벗어나 생각할 틈을 주는 건축이다.

호숫가에 위치해 있는데,
다른 네덜란드 호수들과 달리 나무에 둘러싸여 있어서 춘천 의암호가 떠올랐다.
전체 형태를 알 수 없게 사진들을 파편적으로 찍은 것 같다.
사진에 담기지 않은 각도로는 전혀 다른 형태들이 있는데 상상의 나래를 펼쳐 3차원 퍼즐을 채워나가시길 뻔뻔하게 권해드립니다!
태초에 건축은 밥을 하고 옷을 만들어 입듯 삶의 영역이었다.
도시가 탄생하고 분업화가 되면서 건축가는 건물을 조각하는 장인이 되었다.
기술이 발전하며 디자인과 모더니즘이 탄생하며 건축가는 모든 것을 제어하는 신이 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세대는 ’ 스타건축가‘라고 불리는 건축가들이 세계 곳곳에 랜드마크 같은 건물을 설계하며 영향력을 나타내곤 한다.
앞으로의 건축은 하나의 주요한 방향성보다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갈 텐데, 중요한 것은 다른 사고와 접근법을 존중하고 조화를 이루는 가치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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