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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잃어버렸다. 이번에는 핸드폰과 카드지갑을.
이제는 물건을 잃어버리고 나면 글감이 생겼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글쟁이가 다 된 걸까^^
어떤 경제학자가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물질을 소비할수록 그 물질에 속박된다고 얘기하지 않았나.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으면 내 어록으로 등록해야지.
남는 건 물질이 아니라 말과 생각이니까 말이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던, 콜렉트콜로 전화를 걸어 소통하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졌다.
그때는 연락이 닿지 않더라도 춘천시 후평동에서 낙원동까지 30분 걸어오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브레다까지 1시간 기차를 타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나의 세계가 넓어졌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
이번에 핸드폰과 지갑을 잃어버리게 된 경위는,
요즘 기차에서 전자책을 읽는 좋은 습관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델프트 역에 도착해서 성급히 내리다 보니 핸드폰을 옆자리에 두고 내린 모양이다.
계단을 오를 때까지는 블루투스 이어폰에서 노래가 나오길래 모르고 있다가 열차가 떠난 뒤에 알게 되었다.
사람과도 연이 있듯이 물건과도 연이 있는 것 같다.
연이 닿지 않는 물건들은 자주 망가지고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따지자면 나는 대부분의 핸드폰들과 연이 닿지 않는 셈이지만...
지난 발렌시아 여행을 갔을 때 핸드폰 충전기에 문제가 생겨서 디지털 다이어트를 시도 한 바,
핸드폰이 없는 것은 큰 걱정이 되지 않는다.
카드지갑에도 교통카드, 신분증, 학생증뿐이었기 때문에 역시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열쇠를 잃어버리는 것보다 훨씬 나은 일이다.
열쇠는 신기한 물건이다.
15유로를 내면 다시 만들 수 있는 열쇠를 통해서
4000유로짜리 자동차를 열고, 800유로 월세를 내는 집에 들어간다.
핸드폰은 24개월간 씀씀이에 영향을 주지만
그 안에 있는 사진들 생각들 기록들은 계정을 연동해서 다시 이용할 수 있다.
기계가 똑똑해질수록 사람은 멍청해져서 나는 매일 연락하는 누구의 번호도 외울 수 없는 사람이 되었지만...
이번 발렌시아 여행에서는 핸드폰이 충전되지 않아서 사진도 메모도 지도 찾기도 하지 못하는 여행을 했다.
물론 그래서 동기들에게 꼭 붙어 다녔지만, 개인 프로젝트를 위해 혼자 다녀야 할 시간들이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서 돈도 핸드폰도 없이 돌아다닌다는 것은 정말 생소한 경험이었다.
(돈이 없는 이유는 핸드폰으로 애플 페이만 쓰다가 핸드폰이 없어져서)
갑자기 강도에게 습격을 당해도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과,
객사를 한다 해도 나의 신원을 확인해줄 사람도 없겠다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따라서 해야 할 일이 늘었다.
간단하고 귀찮은 사소한 일들.
학생증 재 등록하기, 신분증 재 등록하기, 유심칩 재 주문하기.
좋은 동기들을 둔 덕분에 핸드폰을 찾으러 갈 때 교통카드도 빌리고 이번에 공기계도 빌려주기로 했다.
내가 다시 베풀 수 있게 된다면 좋겠지만 일단은 호의를 최대한 고맙게 받으며 마음을 표현할 뿐이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델프트 공대 건축학과에 재학하는 한국 학생들 모임이 있었다.
친구가 같은 수업에서 만난 한국인과 결성한 모임으로 이번에는 4-5명 정도 참석했다.
이야기를 나눠 보니 3-4명 정도 더 있는 듯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몇몇이 더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
신년 가족회의에서 각자에게 바라는 것 한 가지씩 얘기할 때 한인회에 가입하라는 강요를 받았는데,
결국 한국 학생들이 모이게 되어서 효도하는 느낌이 들었다.
로테르담 공원에서 모여서 양념치킨과 맥주를 먹고 이야기를 했다.
지난번 풋살모임에서도 그렇고 한국학생들끼리 모이면 양념치킨을 먹게 되는 우연이...
같은 문화적 배경을 공유하면서 같은 공부를 한다니 많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건축업계가 얼마나 참 좁다는 것을 느낀다.
그 좁은 와중에 별별 재밌고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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