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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27일에 인천공항에서 출국해서 2024년 4월 4일 스키폴공항에서 또다시 출국하기까지 983일간의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이 마무리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새롭고 풍성한 경험을 했던 한 장이 끝난 것에 뿌듯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한다.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배웅을 나와준 친구들도 있다. 눈물을 흘린 친구들도 있다.
지금 헤어지는 것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다시 만날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크게 슬프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 귀엽고 따듯했다.
타국에서 만나는 다른 타국친구들은 익숙한 삶에서 변주를 추구하는 비슷한 결의 인간들이었다.
다른 곳에서 시작했지만 비슷한 파형의 삶을 살아가다가 만나는 지점이 있었고 또 자기만의 흐름대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그렇게 꾸준히 살아가다 보면 다른 곳에서 다른 시간에 다시 만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타국에서의 삶은 매 순간 중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살아가는 것 같다.
너무나 당연해서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국가와 제도가 특정한 사람들을 보호함으로 인해 그 영역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은 배제된다.
비자가 필요한 외국인으로서 취업은 회사가 나를 뽑아야만 하는 이유가 2배 3배 더 설득력 있어야 한다. 능력으로 평가하는 능력주의는 공정해 보이지만 능력을 갖기 위한 배경까지 고려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어찌 보면 불필요하다고 여길수도 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회사에서 네덜란드언어가 유창한 사람을 뽑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네덜란드 취직을 꿈꾸는 한국인이 네덜란드어를 공부해 B2 레벨까지 달성했다고 해도, 모국어로 쓰는 사람보다는 능력이 뒤쳐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언제나 우선 선택에서 밀리게 되어서 합격 혹은 탈락으로만 나뉘는 취업시장에서 열정과 의지는 보여줄 기회조차 없다.
하지만 나는 네덜란드에 사는 동안 중력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즐거웠다.
스스로가 낯선 사람이 되어 세상에서 한 발 떨어져 관찰자의 시점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카페에서 옆자리 사람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고, 어떤 정당이 어떤 공약을 가지고 선거에 나오는지도 알기 위해서는 한국에서보다 능동적으로 정보를 찾아야 한다.
생각해 보면 외롭기도 하고 멍청해질 수 있는 세상 속으로 나를 던진 것이지만 그 고독과 무지 또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를 규정지어왔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면서 발견하게 된 다른 면들이 퍽 반갑고 마음에 들었다.
달리기를 꾸준히 하고, 주기적으로 꽃을 사고, 요리를 해 먹고, 인간관계에 주저함 없이 몰입했다.
앞으로 한국 생활에서 얼마나 유지될지 모르겠다.
다행히도 거대한 서울은 얼마든지 나를 낯설게 만들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조금 노력한다면 또 다른 면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매번 만약에를 생각하곤 한다.
만약에 내가 그때 면접에서 포트폴리오 설명을 다른 방식으로 했다면, 만약에 내가 인사과 책임자에게 다른 방식으로 연락을 했다면, 만약에 내가 교수님에게 졸업하자마자 도움을 청했더라면, 만약에 나에게 시간적 여유가 더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면 끝이 없다.
앞으로 또 매번 끊임없이 만약을 생각하고 때때로 자책을 하기도 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나는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 하나의 경우를 살아가는 것이고 그 결과가 지금의 삶이다.
경험주의자로서 모든 경우의 수를 경험하고 싶지만 우리의 유한한 삶에서는 불가능하기에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경우를 감사히 만끽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제는 볼 수 없는 덴하그 Laan van Meerdervort집.
네덜란드 생활을 즐겁게 만들어 준 것은 이 훌륭한 집의 공이 참 크다.
서울에서 자취하던 곳들은 언제나 ’집‘이기보다는 ‘방’이었다.
덴하그 집은 춘천시 낙원동 집 외에 처음으로 나의 집이었던 곳이다.
텅 빈 방에 가구를 들여놓고 미술관에서 모은 엽서를 붙이고 식물을 가꾸면서 나의 공간으로 만들어갔다.
그래서 벽에 붙여놓은 엽서와 포스터들을 뗄 때 다른 물건을 버리는 것보다 섭섭했나 보다.
다가올 서울 ‘집’에 새로운 나의 이야기를 담아가면 되니까 괜찮다.
또 어떠한 다른 나라에서 살게 된다고 해도.
앞으로 티스토리 글은 어떤 것을 올려야 될지 조금 생각해 보아야겠다.
밀린 여행 사진들이 있긴 한데 한번 밀렸다는 것은 의욕이 많이 낮아졌다는 것이기에 언제쯤 올릴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야지 ㅎㅎ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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