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업로드가 점점 더 늦어지며, 이제는 거의 잊힌 블로그가 되었지만 마무리를 적어야 하기에 졸업을 맞아 일기를 쓴다.
지난주 2월 3일 금요일에 3학기의 베를라헤 과정이 끝났다.
시작하기 전에도 짧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직 더 남았는데 갑자기 끝나는 느낌이 든다.
갑자기 내일도 학교에 가야한다는 알림이 오지 않을까 하는 무서운 상상도 해본다.
아마 학사 졸업때와 비교했을 때 일상을 누릴 수 있었어서 그런 것 같다.
학사 때처럼 학교에서 숙식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전체 과제와 개인 과제를 조율하는 과정이 스스로를 한계로 몰아세우지 않도록 만든 것 같다.
몇 년 전이었다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며 자책했을 테지만 지금은 ‘이 정도면 괜찮다’며 격려해주려고 한다.
최선을 다하는 것도 스스로 만족하는 것도 모두 주관적이라면 만족하고 지금 갖고 있는 것에서 발전가능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졸업식은 자신의 졸업장에 서명을 하는것으로 진행되었다.
한 명씩 호명될 때 처음 지원할 때 제출한 자기소개 영상을 캡처해 화면에 띄워서 감동과 웃음이 함께 있었다.
마무리는 주제 패션하우스, 패션위크에 걸맞게 건축학과 대강당 오렌지홀 계단을 캣워크 삼아 걸으며 장식했다.
졸업 전시도 학기 구성과 마찬가지로
전체를 포괄하는 패턴북을 시작으로
그룹으로 나누어 작업한 5개의 패션하우스,
5개의 패션하우스 도시들에 위치한 23개의 개인 작업과
23개의 개인 작업으로부터 부여되는 certification은 다시 패션하우스로 연결되고
개인 작업과 그룹 작업을 모두 포함한 전체 지도 red thread map으로 이루어졌다.
패턴북의 가장 큰 기능은 5개의 패션하우스를 짓는 기준을 제공하는 것이다.
각 도시에 위치한 애플스토어, 자라zara, 이솝 aesop 이 비슷하게 다르게 제품을 보여주고 공간을 구성하는 것처럼
다른 도시에 위치한 패션하우스가 어떻게 같은 서비스를 도시의 특색에 맞게 제공하는지를 규정한다.
예를 들어, 각 패션하우스의 주 출입구는 동일한 크기의 문과 같은 위치에 같은 간판이 붙어있고 모두 메인 로비로 이어지지만 문의 재료는 각 도시의 특색을 보여준다.
패션하우스는 스페인 발렌시아, 프랑스 마르세유, 스위스 취리히, 네덜란드 로테르담, 독일 베를린에 있다.
중세시대 길드하우스를 재해석하여 지역중심의 패션산업이 교류할 수 있도록 업무환경을 제공하고 주민들을 포용할 수 있는 패션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시설이다.
나는 스페인 발렌시아 패션하우스의 팀원으로,
발렌시아 패션하우스는
2040년을 배경으로 20년 뒤 기후와 경제규모를 고려하여 새로운 프로그램과 그에 걸맞은 공간들을 제공한다.
기후위기가 심해져서 지역에 온난화와 사막화가 심해져 지속 가능한 패션산업을 목적으로 기존 기반 산업인 가죽제조산업을 선인장, 야자수 가죽으로 대체 가능하도록 식물들을 기르는 정원, 가죽공방과 대체가죽제품 성능을 검증하는 실험실 등을 제공한다.
이렇게 도시의 특성에 맞게 제공되는 프로그램이 있고, 전체 패션하우스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프로그램이 있다.
모든 패션하우스는 업무공간, 도서관, 강당을 갖고 그 규모는 도시의 규모와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개인 작업은 하나의 건물 용도를 패션산업과 연관 지어 설계하고 그로 인해 부여되는 자격증이 패션하우스의 검증을 받게 된다.
나는 발렌시아 중심가에 위치한 성형외과를 설계했다.
2040년 병원은 자료수집을 기반으로 한 건강정보를 기록하고 분석하는 곳으로 생각했다.
정보보관과 치료 두 가지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치료를 위한 공간은 가정적인 거실, 침실의 분위기를 제공한다.
따라서 환자를 위한 공간과 직원, 의료기기를 위한 공간이 철저히 분리되고 침실의 가구와 장식들은 공간 분리를 위해 사용된다.
또한 인간의 신체를 건물과 비교했을 때, 얼굴을 건물의 외관과 비교하고 성형수술을 받는 과정을 건물의 외관 리노베이션 과정과 비교한다.
따라서 1906년 지어진 신고전주의 장식들을 마치 성형수술을 받는 것처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외관을 제안한다.
성형외과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성형수술을 위한 목적이 아닌 자신의 신체적 특징을 정밀측정해서 디지털 자료로 남길 수 있다.
이렇게 측정된 디지털 마네킹은 패션하우스의 인증을 받고, 병원에 위치한 자료실에 저장되어 자신의 신체를 스스로 모델링하고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 학기 동안 동기들 간에 정보와 능력 불균형에서 오는 작은 균열들이 있었다.
또 졸업과제를 지도하는 튜터는 공격적이고 빠른 대답과 결론을 추구하는 의사소통 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나와 맞지 않았다.
나는 어떤 지적을 받으면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본 다음에 다음 주에 새로운 방안을 내놓는 타입인데 그 튜터는 바로바로 대답하는 학생을 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부분 아시아권 학생들은 생각을 바로 말하기보다는 생각을 정리한 뒤에 도면으로 그려서 보여주는 성향이었기 때문에 그 튜터의 공격의 상대는 주로 아시아권 학생들이었다.
대화방식의 차이라고는 하지만 다양한 문화와 개인의 성격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은 충분히 인종차별적이고 어쩌면 튜터가 되기 위한 자질이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불만을 표출했지만 그 불만의 결론은 ‘너의 편안한 상자에서 나와라’라는 그 튜터의 교육방침 때문이 된다.
학교도 사회집단이기 때문에 좋은 사람 이상한 사람 능력 있는 사람 묻어가는 사람 여러 사람이 있다.
나는 베를라헤에서 공부한 3학기 동안 어떤 사람이었을까.
부족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살아가는 동안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 적이 있나 생각을 할 정도로 똑똑한 동기들을 만나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다음번에 소속될 집단에서는 똑똑한 사람은 못되어도 책임을 다하는 사람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