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네덜란드-로테르담
유럽 최대의 항구도시, 네덜란드 제2의 도시 로테르담,
나에게는 건축 비엔날레, 건축 영화제가 열리는 건축 도시이다.

다른 유럽도시들과 달리 현대적인 건물이 많은 로테르담 이미지에 걸맞은 중앙역이다.
로테르담은 세계대전때 폐허가 된 도시를 새롭게 설계하며 현대건축의 실험장이 되었는데,
사실 유지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지만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완전한 재개발을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서울출신 한국인들은 낯선 유럽 도시에서 친밀한 고향의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아무래도 유럽 중심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대적으로 못생긴 건물들이 나란히 있는 모습들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못생긴 건물을 볼 때 느끼는 속상함은 그 지역과의 심리적 친밀도와 비례하는 것 같다.
못생긴 서울시청을 보면 속상하지만, 춘천시청이 아니라서 안심하는 것처럼.

로테르담을 대표하는 건축물들은 대부분 MVRDV가 설계했고, MVRDV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은 대부분 로테르담에 있다.
로테르담 마켓홀은 과제를 하면서 모든 도면을 찾아보았을만큼 관심을 가졌던 건물이다.
그래서 처음 방문하게 되었을 때 이렇게 이른 나이에 가도 되나 감격에 젖었다.
하지만 직접 가서 보니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물론 건물이 지역사회에 끼친 영향력과 실험정신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주변 맥락을 고려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고 가장 경악스러웠던 천장을 뒤덮은 벽화는 사진을 찍고 보니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 되었다.
사진이 잘 받는 건물을 만드는 것, MVRDV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아파트 아래에 시장이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적응하기 힘들 것 같지만,
주말이면 주택으로 둘러싸인 광장에 시장이 열리는 유럽 문화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대부분의 도시를 여행해보면 그러하듯, 로테르담도 유명한 장소들이 나란히 - 마켓홀 광장 바로 앞에 큐브하우스, 펜슬 하우스가 있다.
정육면체를 모서리가 닿게 회전한 형식으로 내부 공간은 혼란스러우며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같은 형식으로 헬몬드라는 다른 도시에 더 먼저 만들어진 주택단지가 있고,
심지어 지방자치단체가 사회적 주택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마켓홀과 큐브하우스 옆에 있어서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나는 가장 마음에 드는 건물이다.
야프 바케마 라는 알도 반 아이크와 동시대에, 20세기 중반 모더니즘 건축 집단 Team X의 멤버였던 건축가가 설계했다.
유명세가 부족한 탓인지 퐁피두 센터와 같은 연도에 완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노출된 설비들은 퐁피두 센터를 따라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다.

6월경엔가 짧게 설치되었던 파빌리온이다.
로테르담 시내 중심부를 가로지르고, 주요 건물들의 지붕을 지나는 오렌지 계단이다.
다시금 건축적 실험에 대한 로테르담의 도전정신에 감탄했다.
디자인이라고 하기 애매할 만큼 철골 구조체에 오렌지색 카펫을 깐 것이 전부인 계단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계단을 걷다 보면 마켓홀, 에라스무스 다리 등 로테르담의 명소들을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다.
저 다리는 로테르담 출신 철학자 이름을 따서 만든 에라스무스 다리이다.
네덜란드의 대부분 다리가 그렇듯 에라스무스 다리 역시 배의 통행을 위해 열리고 닫히는 개폐교라고 한다.
뒤로 보이는 세 쌍둥이 같은 빌딩은 de Rotterdam이라는 아파트, 호텔, 사무소 등등이 있는 건물이다.
건물 이름이 '로테르담' 이라니 과연 OMA의 자신감이다.

아무래도 MVRDV는 요즘 계단에 꽂혔나 보다.
이 계단은 오렌지 계단보다 먼저 만들어진 상설 구조체이다.
가끔씩 이벤트가 열리는데 잘못 이해하고 신청했다가 한국에서 온 박공원씨와 함께 네덜란드 식민지배 관련한 강연회를 들은 적이 있다..

역시 또 MVRDV에서 만든 미술관이다.
올해 개관한 미술관으로 수장고를 기본 개념으로 했기 때문에 수장고를 들여다보는 형식으로 작품들을 전시한다.
외관과 옥상이 반사체로 되어있어서 역시 사진으로 잘 담기는 건물이다.
오른편 일련의 흰색 건물들은 에라스무스 병원이다.
가장 뒤편에 위치한 건물 창문이 귀여운데 잘 안 보여서 아쉽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도시의 건축과 맥도날드 매장을 다시 연결지어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
크지 않은 규모이지만 원형계단과 외부 사진을 인쇄한 타공판을 보아하니 정성이 많이 들어간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2015년 완공되어 2016년 가장 아름다운 맥도날드 매장으로 뽑혔다고 한다.

20세기 초반 몬드리안과 리트벨트와 함께 De Stijl이라는 조형주의 운동을 하던 예술가 중 한 사람이 만든 카페이다.
1920년대 완공되었지만 세계대전 때 폭파된 뒤로 70년대에 재건되었다가 지금은 다시 또 공사 중이다.
몬드리안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비례와 색 조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네덜란드에서 공부를 하고자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를 제공한 건축물과 설계회사들이 모여있는 로테르담.
1년 전 처음 로테르담에 가게 되었을 때 설레던 마음이 다시 생각난다.
이제는 너무 많이 방문하다 보니 익숙해졌지만, 다음에 로테르담에 가게 될 때는 그 설렘을 다시 안고 가겠다.